12월이면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한 지 1주년이 된다. 지난 1년여간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크게 증가했고,한국의 원전기술에 대한 세계의 평가도 새로워졌다. 그 결과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및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국의 참여를 요청해오고 있다. 세계 원전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국가는 프랑스 일본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으로 만만한 상대가 없다.
지난달 31일 한국,프랑스와 경쟁을 벌이던 일본이 베트남 원전 2기를 수주했다. 일본은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장기간 원자력 교육과 원조로 공을 들였다. 이번 수주에는 총리가 중심이 된 민관합동체제가 주효했고,베트남에 대한 사회
간접자본과 자원개발 지원을 약속한 '원전 패키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430기의 원전이 건설될 전망인데,우리 정부는 이 중 80기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중단됐던 미국의 신규 원전 건설이 오바마 정부 들어 재개되고,독일 스웨덴 등은 원전
가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인 원자력 르네상스의 배경 중 하나는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감소다. 체르노빌 등의 원전사고는 1960년대 전후 건설된 초기 원전들에 집중됐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건설된 신형 원전에서는 거의 없다. 또 다른 배경은 태양광 풍력 등의 대체 에너지만으로는 온실가스 증가를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핵융합은 수십년 내에 실용화
가능성이 낮지만,원전 핵폐기물 처리와 안전 기술은 완숙한 단계에 와 있다.
한국은 원자력발전의 후발 주자이지만 가장 최신의 원전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1978년 이래 20기를 운영하면서 단 한 번의 핵사고도 없었고,원전
가격경쟁력도 가장 높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각축장인 세계 원전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데 있어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20년을 내다볼 때 시급한 과제는 국내 원전건설 역량의 확충이다. 우리나라는 국내 건설 중인 10기의 원전과 UAE 4기 건설만으로도 세계 최대의 원전 건설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세계적 원전 수요를 고려할 때 현재의 원전 공급능력 한계인 20기 돌파 방안이 필요하다.
문제는 전문인력의 부족이다. 원전건설에는 10년 이상 경험을 가진 고급인력이 필요하다. 원자력 1세대들이 고령화되고 있어,인력 부족은 현재진행형이자 곧 미래의 문제다. 현재 원자력 유경험 퇴직자까지 모두 흡수하고도 부족한 실정이므로,유사 전공자 재교육 등 인력 조기 확보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5년 전 10여개에 불과했던 원자력학과를 44개로 늘려 원자력시대를 대비하는 중국을 참고할 만하다.
다음으로 미래 원전시장을 주도하려면 우리도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예컨대 해상운송이 가능한 이동식 원전을 가장 먼저 개발하면,핵연료만 제외한 상태에서 국내조립 후 세계 어느 해안이든지 수개월내 설치가 가능하다. 해외건설 원전에 비해 국내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세계 최단기 원전 건설능력을 갖게 되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원자력 부흥을 위한 고단위 처방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국과장급으로는 전 세계 정상들을 상대로 한 원자력 비즈니스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에너지청을 신설하거나 원자력차관을 두는 것도 방안이다. 터키와 같은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초장기 금융지원도 필요하다. 평화적 원자력 이용에 가장 모범적인 국가에 걸맞게 한 · 미 원자력협정도
개정돼야 한다. 기술은 있지만 원전
건설인력이 부족한 미국에 한국은 좋은 우방이다. 서로 협력하면 세계 원전시장을 제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춘택 <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한국경제신문 2010.11.15